그런 기분이 든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무 생각 없이 다이어리를 넘겨 보다가 남은 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였을까, 아니면 친구들과 아무 의미 없이 했던 말들 가운데 하나였던 ‘좀 있으면 우리도 나이 앞에 2 달겠네.’ 라는 말을 새삼 되새겼을 때였을까. 목전에 수능이라는 가장 큰 과제를 두고 있음에도 나는 뭔가가 계속 거슬렸다. 그게 공부 때문이 아니라는 건 내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이렇게 뱃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겠지.
그 기분은 매번 찬바람과 함께 찾아오곤 했었지만 이번처럼 나를 짓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내 뱃속에 들어앉은 어떤 진공이 나를 그대로 집어삼키는 듯한 느낌.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매우 불쾌했다. 곧 끝날 거라는 사실이 홀가분한 게 아니라 매우 기분이 나쁘고, 나를 허전하게 만들었다.
해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아마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한 건 더 나은 성적이 아닌 다른 것들이었던 것 같다. 확신은 할 수 없다. 아마 내가 지금 해보지 못했다고 억울해 하는 것들을 쫓았다면 나중에 가서는 공부 좀 할걸,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 결국 나는 치열하지 못했음이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적당함이 짜증났던 거다. 뭘 해도 후회는 없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것도 확신은 없다.
만약에, 만약에. 그런 말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곱씹어 보게 되는 건 왜일까. 만약에 내가 그 때 막연한 거부감으로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원하는 바를 미리 이야기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나는 정말 후회없는 선택을 해 왔나? 내가 정말 이걸 원한다고 생각하고 주저없이, 선택 했던 걸까?
지금 이러는 걸 보면- 아마 그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학창시절’이나 혹은 ‘10대’라는 카테고리에 속해있는 어떤 것에 대해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 나는 한없이 억울하고, 억울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나버린다는게 너무너무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이대로 대입에 매달려 12월이 지나가고 졸업해 버리고 나면 누릴 수 없는 그 나름의 어떤 것을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나 억울해 미쳐버릴 것 같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지레 포기해 버린 것, 할 수 없었던 것, 하지 않았던 것, 해선 안된다고 했던 것들.
결국 나는 하지 않은 거니까. 근데 나는 그 모든 걸 해보고 싶었다.
가끔은, 그냥 내가 바보 천치였으면 좋겠다.
이것도 결국은 투정일 뿐이라는 걸 내 스스로가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