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Grumble 2009. 3. 15. 23:21





 우리 나이대의 연애란 것은 대개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적당한 데이트메이트를 찾는 것, 혹은 남에게 보여줄만한 [장식]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닌 '소개'라는 루트를 통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라고 그 보편적인 일들과 다를 건 없었다. 그건 그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에겐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상대였지만 그게 외부의 시선 문제가 되었을 때에는 달랐다. 뭐 어쨌던 나는 누가 아깝네 누가 별로네 하는 소리따위 듣기 싫었고 녀석도 동의했다. 나는 언제나 그에게 모자란 사람이었고 그도 내겐 부족한 사람이었다. 우린 그걸 잘 알았다.


 나는 연애감정같은 거, 믿지 않았다. 믿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지독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 혹은 그렇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 말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따위 한 철 놀음이고 소모적인 행위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효용. 그것만 따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보고싶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혈육조차 그리워하지 않는 나였다. 혼자가 둘인 것보다 편하고 좋았다(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이런 나를 녀석은 그저 내버려뒀다.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게 너지, 라고 말하면서. 내가 힘들 때에만 찾고 칭얼거려도 그러려니 해 줬다. 그래서, 녀석은 내게 있어서 괜찮은 놈. 좋은 녀석. 그게 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 보고싶다. 있어줬음 좋겠다.




 작은 상자를 받았다. 이틀간 경비실에 맡겨져 있던 상자였다. 주소는 낯선 언어로 쓰여 있었다. 그럴 리 없다면서 상자를 열었고 나는 작은 쪽지와 막대사탕 세개, 평범한 은색 줄에 매달린 평범한 두개의 반지를 받았다. 쪽지에는 남자애답지 않게 정갈한 글씨로- 나보다 글씨를 잘 썼었다 - 소소한 근황과 몇 가지를 당부하는 말들이 쓰여 있었다. 반지는 나중에 대학 갔을 때 내가 한국에 가면 그때 돌려줘. 사탕은 많이 먹으면 이빨 썩으니까 그것만 먹어. 보고싶어.
 별 말 없이 외국으로 녀석을 보내고 (그 전에 헤어졌지만) 났을 때에도 울지 않았는데. 난 뭐가 그렇게 서러웠던 걸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이제는 별 기억도 나질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끝을 잡아당기니 주렁주렁 딸려나오는 기억들은 너무너무 생생했다.



 작년 화이트데이에 나는 처음으로, 가족 아닌 남자에게- 혹은 친구 아닌 남자에게 사탕을 받았다. 막대사탕 여러 개를 엮어 만든 다발 같은 거였는데- 보통 여자애들이었다면 먹기 아깝다고 장식해놨었겠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냉큼 하나를 뽑아 맛있게 먹었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웃고있는 녀석의 입에도 냉큼 하나를 까서 물려줬다. 한 20개는 됐던 것 같았는데-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다섯개씩 사이좋게 해치워 버렸다.
 그때 뭐랬던가. 녀석은 내 입술이 폭신폭신해 보여서 맘에 든다고 했다. 사탕 물고 있는 게 귀엽다고. 나는 어이없어하면서 비웃었고-동시에 매우 쪽팔려했다- 그날 나는 첫키스를 했다. 그래서 내 첫키스는, 츄파츕스 5개분의 느낌이었다.
 만성빈혈 때문에 창백한 편인 내 얼굴은 드물게 새빨개졌고 녀석도 가무잡잡했던 편인 얼굴이 벌겋게 되어 있었다. 잠시동안 어색하게 아무 말도 안했지만 우리는 이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뒤집어지도록 웃었다.




 이상한 기분이다. 현수는, 내게 잊지 못할 화이트데이를 두번이나 안겨줬다. 나는 이 반지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오기 전에 차마 건네주지 못했었다던 그 반지. 이게 정리를 뜻하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약속인지. 나에게 맡기겠다는 건지. 내게 온 것은 크기가 다른 두개의 반지였으니까.
 나는 내가, 매우 평범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같은 연애, 드라마에서 볼 것 같은 감정의 흐름 같은거 내가 겪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냥 별 질곡 없이 흐를 뿐인 인생을 사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닐지도 모르게 되었다. 아마 그 외국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녀석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나는 이미 매우 소중한 추억을 선물받았다. 아마 생각보다 더 좋아했었는지도 몰랐다. 분명 애정을 받을 만큼 받고 자랐어도, 나는 언제나 애정에 허덕였다. 관심을 바랬고 누군가가 품어주길 바라면서 기댈 곳을 찾았다. 넉넉한 현수는 그래서, 좋았다. 어디서나 어른스럽고 속 깊은 첫째, 학생, 그리고 나여야 했는데 현수 앞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힘들어, 그러면 괜찮아. 하고 토닥여줄 사람이었으니까. 아, 나 정말 생각보다 더. 내가 느꼈던 것보다 더 좋아했구나.





 지칠 정도로 울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Posted by 달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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